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카소네 야스히로 (문단 편집) == 논란 및 망언 == 1985년 [[야스쿠니 신사|야스쿠니]] 참배 며칠 전 그는 야스쿠니를 미국 알링턴 등 전몰장병 묘지와 동급으로 놓고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거나, 도쿄재판 사관을 자학적이라고 비판하며 "전후는 총결산됐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리영희]] 교수는 [[월간 말]] 1994년 6월호 칼럼 <일본인 망언 규탄 전에 국민 총반성이 필요하다>에서 해당 발언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당시 서독 대통령의 패전 40주년 기념사와 비교하며 냉철히 비판했다.[* 이 칼럼은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도 수록됐다.] [[1986년]] [[9월 22일]] 자민당 연수 강연회 연설에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609250023910401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6-09-25&officeId=00023&pageNo=4&printNo=20147&publishType=00010|미국은 흑인과 남미계 민족 등으로 인해 지적 수준이 아직 낮다]](しかも日本はこれだけ高学歴社会になって、相当インテリジェントなソサエティーになってきておる。アメリカなんかよりはるかにそうだ。平均点から見たら、アメリカには黒人とかプエルトリコとかメキシカンとか、そういうのが相当おって、平均的にみたら非常にまだ低い)'''"[* [[일본어 위키백과]]에는 [[https://ja.wikipedia.org/wiki/%E7%9F%A5%E7%9A%84%E6%B0%B4%E6%BA%96%E7%99%BA%E8%A8%80|지적수준 발언]]이란 단락으로 소개되어 있다.]."란 발언을 해 미국 흑인과 남미계 미국인들을 격분하게 했다. 변명이랍시고 9월 24일 중의원에서 "'''미국은 다민족 국가인 관계로 교육이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단일민족 사회이기 때문에 교육을 하기 쉽다. 연설 전체를 읽으면 알 수 있다. 다른 나라를 비방하거나 인종차별을 한 건 아니다(米国はアポロ計画や戦略防衛構想で大きな成果を上げているが、複合民族なので、教育などで手の届かないところもある。日本は単一民族だから手が届きやすいということだ。演説全体を読んでもらえばわかる。他国を誹謗したり、人種差別をしたわけではない).'''"란 말을 해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어 미국 정계가 들고 일어났고 결국 나카소네는 9월 27일 미국 정부, 의회, 국민들에게 진상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이외에도 나카소네는 [[1997년]] [[10월 4일]], [[홋카이도]] [[오타루시]]의 강연회에서 [[주일미군]]을 "망보는 개"에 비유하여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일본은 주일미군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파수견(把守犬)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돈을 내고 미군을 주둔시켜 파수견으로 쓰는 격이며 그것이 현명하다. 나카소네는 미일안보체제를 주제로 강연하는 도중 주일미군을 일본을 위해 망보는 개로 칭했으며, 이런 나카소네의 발언에 미국은 매우 불쾌해 했고 그 당시의 미일관계는 [[1997년 외환 위기]]이라는 복합적 요인과 맞물려 최악으로 치달았다. 나카소네의 이같은 발언에 당시의 [[조선일보]]도 주한미군에 대해 "탈냉전시대 미국의 전략이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주한 미군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라는 논평을 냈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0600289107012&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7-10-06&officeId=00028&pageNo=7&printNo=3001&publishType=00010|미군은 망보는 개, 나카소네 돌출발언]],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0600209109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0-06&officeId=00020&pageNo=9&printNo=23671&publishType=00010|미군은 망보는 파수견]],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7100670320|주한미군을 보는 눈]]] 또한 이 자리에서 [[록히드 사건]]으로 유죄 확정된 중의원 사토 고코를 총무청 장관에 기용하도록 당시 현직 총리였던 [[하시모토 류타로]]에게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정차가는 성인군자일 필요는 없다. 정치가가 도덕의 기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나, 그것이 제1의 조건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되받아친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